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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은 이제 너무도 흔한 일이 됐다. 이혼한 사람이 많다 보니 이혼은 쉬운 일로만 여겨지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서로 마음이 맞아(?) 협의 이혼을 하거나 조정을 통해 이혼 한다면 가장 원만하다. 그렇지만 재산 분할은 어떻게 할지, 미성년자녀가 있다면 양육은 누가 하고 양육비는 얼마나 주며 면접교섭은 어떻게 할지 정해야만 한다.
만약 소송으로 이혼해야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원고는 상대방에 이혼사유가 있다는 것을 법원에 ‘입증’해야 한다. 상대방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샅샅이 증거까지 들어서 제시하게 된다. 피고는 원고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이혼사유나 문제점을 들어 반박하기 위해 상대방의 약점을 치밀하게 파고든다.
대부분의 소송에선 부부의 친족이나 매우 가까운 지인들의 진술서가 증거로 제출된다. 부부관계는 사생활이어서 부부 문제를 증명할 자료가 별로 없다 보니 생기는 불가피한 문제점이다. 결국 지인들도 이혼의 스트레스를 함께 겪게 된다.
재산분할과 위자료 문제에 이르면 서로의 재산을 드러내기 싫어 숨기게 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상대방의 모든 금융거래내역을 조회하게 된다.
이처럼 이혼은 서로에게 감정적인 소모가 크다.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에게도 상처가 생긴다. 이런 이유로 서로 마음만 맞으면 언제든지 따로 살며 자신의 삶을 누리고, 자식 및 부모님들과의 가족관계는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는 졸혼이 이혼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법원에서도 법적인 부부관계는 유지하되 별거하는 형태의 조정결정을 내리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 졸혼과 졸혼계약의 법적 효력
졸혼은 부부가 합의만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주거공간을 따로 하여 별거하며, 상호간에 배우자로서의 애정, 동거와 협조를 요구하지 않되 가족관계의 테두리는 유지하는 합의만 있으면 충분하다.
하지만 혼인신고를 통해 인정 된 법률상 부부관계를 단순한 합의만으로 종결시킬 수는 없다. 졸혼한 지 아무리 오래 됐다 해도 마찬가지다. 별거나 졸혼을 한지 10년이 넘으면 ‘자동이혼’이 되어 부부가 아니게 된 것으로 생각하고 상담을 온 분들이 여럿 있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민법상 절차에 따른 협의이혼을 하거나, 이혼소송을 통해서만 부부로서의 법적 지위를 종결시킬 수 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여전히 이혼소송을 제기하고 위자료 또는 재산분할도 청구할 수 있고, 일방이 사망하면 상대방은 배우자로서의 상속권도 있다(직계존비속이 없는 경우 단독 상속, 상속분은 직계존비속의 1.5배, 민법 제1003조, 제1009조 제2항).
만약 졸혼계약을 체결해서 일체 배우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었다해도 모든 법률관계가 정리됐다고 볼 수는 없다. 가족관계에 기반한 권리는 함부로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상속권은 사전 포기가 불가능하여 상속권 포기 계약 역시 무효가 된다(대법원 94다8334 사건). 친자확인 등과 관련된 인지청구(혼외자가 친부모의 친자임을 확인)와 관련된 권리 역시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도 무효가 된다(대법원 2001므1353 사건). 이혼시의 재산분할청구권도 마찬가지로 포기할 수 없다(대법원 98다58016 사건). 법률상으로는 부양의무는 있어도 부양권의 포기는 없어 가족간의 법적 부양의무 중 1순위의 부양의무인 배우자간 부양의무가 문제될 수도 있다(민법 제974조).
졸혼계약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재산분할 정도인데, 혼인 중의 재산분할 약정은 효력이 없으므로 나중에 이혼소송을 하게 되면 재산분할 문제는 다시 법원의 판단을 거쳐야만 한다. 다만 졸혼계약에서 정한 재산분할 조항이 이혼시 재산분할에도 상당부분 참작될 수 있어 보다 원만한 이혼에 이를 수 있다.
- 이혼사유가 될 수도 있는 졸혼
이처럼 졸혼으로는 법적인 부부관계를 청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졸혼한 부부가 법적인 부부관계까지 끝내고자 하고, 협의이혼을 할 수는 없었다면 이혼소송의 이혼사유로 졸혼을 주장할 수도 있다.
민법에서 정한 이혼사유에는 ① 배우자의 부정행위(소위 간통), ② 악의로 배우자 유기(遺棄), ③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의 부당한 대우, ④ 배우자의 자기 직계존속에 대한 부당한 대우, ⑤ 3년 이상 배우자의 생사 불명 등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도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 이혼사유가 된다고 본다(민법 제840조 제6호).
졸혼한 부부는 이미 별거 중인 부부이다. 서로 혼인관계를 계속할 의사도 없고, 이제는 법적인 부부관계마저 종결시키려 한다. 그렇다면 실체적인 혼인관계는 파탄났다고 충분히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졸혼 부부의 일방이 이혼을 거부해도, 결국 법적인 부부관계만을 유지하려는 의사만이 있을 뿐이어서, 민법 제840조 제6호의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tip box>
· 졸혼시의 주의점 : 졸혼시 상호간의 재산분할 계약을 한다면(계약서로 정하지 않고 서로 구두로 합의했다 해도 계약은 체결된 것으로 본다), 이혼을 통한 재산분할과 달리 증여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다만, 배우자 사이에서는 10년 이내에 총액 6억 원 이하의 증여는 면세 대상이므로 이를 초과한 증여의 경우에만 세금부담 문제에 대한 협의가 필요할 것이다.
**위 칼럼은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월간지 '사학연금' 2020년 10월호에 게재됐습니다.
http://tpwebzine.com/page/vol407/view.php?volNum=vol407&seq=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