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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보이스피싱은 너무도 흔한 일이 됐다. 많은 사람들이 OOO검사, OOO수사관으로부터 ‘통장이 사기 범죄에 이용됐다, 피해금을 넣어두지 않으면 구속될 수 있다’란 전화를 받고 있다. 나 역시 법학전문대학원 재학 중 모 검사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수사과정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 보니 사기임을 눈치챘으나(결정적인 것은 개명한 것도 모른 채 개명 전 이름으로 통장과 카드가 신규 발급되어 관악산에서 발견됐다는 어수룩한 유인책의 말을 듣고 나서였지만), 경찰서 한 번 갈 일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칫 넘어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보이스피싱의 문제는 점조직으로 각 공범들을 관리하며 운영되다보니 일당을 체포해 처벌받게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누군지 알 수 없으니 돈을 돌려 받는게 난망(難望)이다. 곗돈이나 사업 투자금 사기꾼이 야반도주한 경우와 마찬가지다.
운좋게도 범인이 체포됐다면 이제 피해금을 돌려받을 차례다. 합의금을 받으면 가장 좋지만 보통 돈이 없다며 원금 또는 원금의 일부만 주거나 한 푼도 못준다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도 마냥 포기할 수는 없다.
- 소송을 하지 않아도 된다
시침 뚝 떼고 잘못이 없다거나 줄 돈이 없다는 가해자에겐 결국 민사소송을 해야 한다. 판결문이라도 들고 있어야 혹시 모를 재산에 압류라도 시도해보고, 10년 씩 시효를 연장해가며 언제가 확보될 월급이나 재산에 강제집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홀로 소송을 하려 해도 상대의 가해행위가 왜 위법한지, 자기가 입은 피해가 배상받아야 할 피해가 맞는지 판사에게 증거를 대어 인정을 받는 과정은 녹록치 않다. 이 경우 형사배상명령이 매우 유용하다.
형사배상명령이란, 특정한 범죄를 범한 가해자에게 유죄 판결 선고와 함께 판사가 범죄행위로 발생한 직접적인 피해(사기 피해금, 상해 치료비 등)와 위자료를 배상하라는 ‘집행력 있는 민사 판결 정본’과 동일한 효력이 있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제도다(소송 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이하 소촉법’ 제25조, 제34조). 즉, 배상명령이 적힌 형사 판결문이 있으면 따로 민사소송을 하지 않고도 상대의 재산이나 계좌, 월급을 압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 형사배상명령의 방법
이처럼 형사배상명령은 달리 민사소송의 어려운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범죄 피해자에게 편리한 제도다. 그렇지만 상해범죄와 성폭행, 그리고 절도, 강도, 사기, 공갈, 횡령과 배임 및 재물손괴 범죄(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공중밀집장소 추행 등 일부 범죄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일부 범죄 포함)에만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제도다(소촉법 제25조 제1항 제1호).
배상명령은 형사 재판의 1, 2심 변론이 종결될 때까지만 신청할 수 있다(소촉법 제26조 제1항). 물론 판사는 신청이 없어도 직권으로 배상명령을 할 수 있고, 검사는 피해자에게 배상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는 통지를 할 의무가 있지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미리 신청 하는 것이 안전하다(소촉법 제25조 제1항, 제25조의2). 실제로 지인이 보이스피싱 피해자였던 형사사건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난 뒤,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혀 유죄가 선고 된데다 징역형까지 선고되었는데도 배상명령 신청을 깜빡한 바람에 판결문에 배상명령이 기재되지 않았던 사례가 있다.
배상명령 신청은 꼭 피해자가 하지 않아도 되고, 법원에 대리허가신청서를 내어 배우자, 직계가족, 형제자매가 할 수도 있다(소촉법 제27조 제1항). 신청방법은 형사사건 진행 중인 법원에 신청서(필요시 증거서류 포함)를 내거나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다면 배상명령을 신청하겠다는 말을 판사에게 함으로써 구두 신청할 수도 있다(소촉법 제26조 제1, 5항). 양식은 각 법원 민원실 또는 인터넷 법원전자민원센터에서 찾을 수 있다.
다만, 이미 피해금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태라면 배상명령을 신청할 수 없으니 이 점을 주의해야 하며(소촉법 제26조 제7항), 배상명령으로 받을 수 있는 피해금은 직접 피해금과 위자료이기에 혹시 사기 피해액을 마련하기 위해 가해자가 대출을 요구하여 대출 한 경우의 이자나, 상해 피해자가 입원치료를 받는 기간 그리고 노동능력을 일부 상실함에 따른 수입상실액(소위 말하는 ‘일실수입’)은 별도로 민사소송으로 제기해야 한다(소촉법 제25조 제1항).
- 배상명령으로도 받지 못한 피해금은 민사소송으로
배상명령 전부가 인정되지 않았거나 배상명령으로 신청한 금액 중 판사가 일부만 인정해 명령을 내린 경우엔, 인정되지 않은 금액을 민사소송으로 다시 제기해야 한다(소촉법 제34조 제2항, 제33조 제5항),
이 경우 문제는 가해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핸드폰번호 등을 알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름만 알고 주소를 모르면 소장 송달을 할 수 없어 소송 진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시송달도 우선 주소를 알아야만 신청 가능한 제도다.
해결책이 몇 가지 있는데, 상대의 주민등록번호를 알면 법원의 명령을 받아 주민센터에서 가해자의 주민등록초본을 발급받을 수 있다. 핸드폰번호를 알면 법원에 각 통신사에 대한 사실조회신청을 하여 가입내역을 확인 받아 가입자 주소지, 주민등록번호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사업자등록번호를 알면 관할세무서에, 계좌번호를 알면 해당 금융기관에, 소유했던 부동산을 알면 해당 주소지 관할 등기소에, 자동차번호를 알면 자동차등록사업소에 대한 사실조회를 통해 주소지와 주민번호를 알 수 있다.
형사 사건 진행이 됐다면 해당 사건의 기록이 있는 곳에(수사 중일 경우 및 판결 확정시 관할 지방검찰청, 판결 확정 전에는 소송 진행 중인 관할 법원) 사실조회신청을 할 수 있다.
<tip box>
· 합의 했지만 합의금을 받지 못한 경우 : 일반적으로는 합의금을 받지 못하면 합의서를 작성해주지 않으므로 이러한 경우는 흔치 않지만, 합의금을 나눠 받거나 하는 경우 지급 받지 못한 합의금을 받으려면 결국 소송을 해야 한다. 이 경우 아직 형사소송 2심이 끝나지 않았다면 그 합의금 액수를 형사배상명령의 형식으로 확실하게 남기고 배상명령을 통해 강제집행을 할 수 있으니 적극 활용해볼 필요가 있다(소촉법 제25조 제2항). 쌍방 화해(합의)를 한 사실을 형사기록에 남길 수도 있는데, 이 경우 민사 판결문처럼 이 화해기록으로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소촉법 제36조). 배상명령의 대상이 아닌 범죄 사건에서도 가능한 절차이므로 공증비용을 아낄 수 있다.
**위 칼럼은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월간지 '사학연금' 2020년 1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http://tpwebzine.com/page/vol409/view.php?volNum=vol409&seq=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