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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 되며, 방역당국의 방역수칙을 위반하거나 방역활동을 방해하는 이들에 대해 소송도 잇따르고 있다. 코로나 의심증상이 있는데도 제주도를 여행한 속칭 ‘강남 모녀’에 대한 제주도의 손해배상 청구, 방역수칙 위반 및 비협조를 한 신천지에 대한 대구시의 1,000억 원 대 구상금 청구, 8.15 집회를 주도한 사랑제일교회에 대한 서울시의 손해배상 청구와 건강보험공단의 구상금 청구 등이 대표적이다.
확진자가 거짓말을 하거나 방역수칙을 위반해 불필요하게 감염자가 늘어나 방역당국의 방역비용이 늘어났거나 상인들의 수익이 줄어들어 손해가 생길 수 있다. 그러니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은 일견 이해가 된다. 그런데 건보공단이 확진자들에 지급한 보험급여를 내놓으라고 하거나, 지자체가 주민들에게 지급한 구호비용, 각종 재해지원금을 청구하는 소송들은 사뭇 다르다. 직접 피해자가 아닌 이들이 소송을 건 것이다. 건보공단이나 지자체는 법률에 따라 지급해야 할 돈을 지급했을 뿐이니 손해를 본 피해자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어떻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일까?
- 사고를 일으킨 자,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본래 빚을 갚아야 할 채무자가 갚지 않을 경우, 보증인이 있다면 대신 갚아야만 할 것이다. 보증인은 원래 자기 채무가 아니었으니 대신 갚은 빚의 대가를 돌려받아야만 하고, 본래의 채무자인 주 채무자에게 그 돈을 청구할 수 있다. 이것이 구상(求償)권이다. 민법에선 각종 보증인들의 구상권을 규정해두고 있다(민법 제425조 내지 제427조, 제441조 내지 제448조 등). 상법에선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사고가 생긴 경우에, 사고를 일으킨 제3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보험자대위라는 규정을 두었다(상법 제682조). 보험금을 지급한 자가, 그 지급 금액의 한도에서 피해자의 권리인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질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두 가지 규정의 공통점이 있다. 채권자(또는 피해자)가 받아야 할 돈을 채무자가 아닌 누군가(보증인 또는 보험자 등)가 대신 지급하게 하여 우선 급한 불을 끄게 한다. 그리고 나서 채무자(또는 가해자)와 돈을 지급한 자 사이에서 책임 공방을 나누는 것이다. 피해자의 권리를 신속하게 회복시켜 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보험사들의 일 처리도 이렇게 진행된다.
이처럼 구상금 소송은 보험사들에겐 아주 익숙한 소송이다. 신호등이 고장나 교차로를 통과하던 차량이 그만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를 친 경우, 자동차보험사는 피해자에 보험금을 지급한 뒤에 신호등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지자체에 소송을 제기한다. 원래 지자체가 냈어야 할 돈을 보험사가 대신 냈으니, 이제 그 부담을 지라는 것이다. 무보험 자동차 사고를 일으킨 경우, 상대가 무보험 사고 특약에 가입해 보험금을 지급받았다고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다. 가해자는 상대 보험사로부터 지급한 보험금을 내놓으라는 소송을 당할 수밖에 없다.
이번 건보공단이나 지자체들의 소송도 구상권 규정에 따라 제기된 것들이다. 재난안전관리기본법에는 재난이 발생해서 각종 구호, 지원금을 지급한 경우, 재난을 일으킨 원인제공자에게 부담한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는 구상금 청구 규정이 있다(재난안전관리기본법 제66조 제6항). 보험급여사유, 즉 상해나 질병을 일으킨 자가 있을 경우에는 건강보험공단 역시 지급한 보험급여에 대해 원인자에게 구상을 청구할 수 있다(국민건강보험법 제58조 제1항).
- 구상금 소송과 손해배상 소송
이렇게 구상금 소송은 손해를 본 피해자가 제기하는 소송은 아니다. 하지만 그 형태를 보면 손해배상 소송과 매우 유사하다. 본래 피해자가 제기했어야 할 손해배상 소송을 대신해서 하는 것이다 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청구를 한 자는 가해자가 어떤 잘못을 했고, 그것이 피해자의 피해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피해자의 피해는 어느 정도인지를 모두 주장하고 입증해야만 한다(대법원 94다32054 사건 등 다수 판례).
손해배상 소송과 다른 점도 있다. 아무리 실제 피해가 많았다고 해도, 구상금 소송은 지급한 보험금(또는 지원금)을 한도로만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만약 피해자가 가입한 보험계약의 보험금이 실제 손해보다 적었다면, 구상금 소송 자체가 기각되어 패소할 수 있다. 보험자가 일부의 보험금만 지급한 경우에는 피보험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구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상법 제682조 제1항 단서). 이 경우에는 먼저 피해자가 직접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서 피해가 전부 회복되어야만 한다.
시효문제도 주의해야 한다. 구상금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종류에 따라 소멸시효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채무 보증을 해서 대신 빚을 갚았다면, 주 채무자에게 구상금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은 민법에서 정한 10년이다(민법 제162조). 반면 보증기금이 보증계약에 따라 대신 채무를 변제한 경우에는 5년 내로만 구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상법 제64조, 대법원 91다37553 사건 등). 보험금 지급의 경우에도 사안마다 다른데, 여러 가해자 중 한 가해자의 보험사가 보험금을 전부 지급했다면, 다른 가해자에 대해선 보험금을 지급한 때로부터 10년 내에 구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대법원 93다32958 사건 등). 그러나 피해자의 보험사가 피해자에 보험금을 지급한 경우 보험사는 사고의 피해자가 손해를 알았거나 가해자를 안날로부터 3년 이내에만 가해자에게 구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대법원 2010다67500 사건 등). 피해자의 권리를 대신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tip box>
· 구상금 소송을 당한 경우 : 우선 상대가 소송을 제기한 근거부터 확인하자. 보험이라면 보험계약의 보험금 지급 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없는지, 지급할 필요가 없는 보험금을 지급한 것은 아닌지 따져볼 수 있다. 지급의무가 없는 보험금을 지급한 경우 구상금 소송도 불가능하다(대법원 2017다234217 사건 등). 피해자의 과실이 있다면 일반 손해배상청구와 마찬가지로 피해자의 과실비율만큼 구상금에서 감액해야 한다는 과실상계 주장도 할 수 있다(민법 제396조).
**위 칼럼은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월간지 '사학연금' 2021년 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http://tpwebzine.com/page/vol411/view.php?volNum=vol411&seq=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