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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법률 알아보기-집행유예와 선고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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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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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측정거부와 음주운전, 무면허 전과까지 있던 사람이 또다시 음주운전을 했고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징역형을 구형했는데, 법원은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런 뉴스를 보면 사법제도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마땅히 실형을 살아야 할 사람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건은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보아선 제대로 알 수 없다.

 

이 사건 운전자는 음주운전 전과가 13년 전으로 그쳤고, 그 후 음주운전으로 단속된 적이 없었다. 이렇게 자숙하던 사람이 왜 갑작스레 음주운전을 했을까. 그는 어린 쌍둥이 자녀를 홀로 양육하던 아버지로, 지인에게 아이를 맡기고 조문을 갔고 그날 밤을 보내려고 했었다. 그런데 운전자에게 자녀가 갑자기 아프다는 연락이 왔다. 다급한 마음에 운전자는 그만 13km를 운전해갔고, 다행히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사건을 담당한 항소심 법원은 이런 사정을 감안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실형을 선고하기에는 참작할 사정들이 있다고 본 것이다. 유예제도는 이렇듯 유죄를 선고하지 않기에는 범죄임이 확실하나, 실형을 선고하기에는 가혹한 경우 활용되도록 만들어졌다.

 


- 유예란 무엇인가

 

형법 제62조에는 형의 집행유예, 제59조에는 선고유예가 규정되어 있다. 단어의 의미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집행유예는 유죄를 인정하되 형을 집행하는 것만을 미루는 것이다. 선고유예는 선고 자체를 미뤄준다. 그런데 유예 제도의 의미를 미뤄준다는 것으로만 알지, 그 효과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유예 제도는 속된 말로 ‘사고를 치지 않는 지’ 지켜보는 제도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집행유예는 유예 기간(최소 1년에서 최대 5년) 동안 고의로 범한 죄로 금고 이상의 실형의 확정판결을 선고받지 않은 한, 집행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금고나 징역형 같이 신체를 구속하는 형이라면 교도소에 가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 만약 집행유예 기간 중 고의로 또 다른 죄를 저질러 금고나 징역형의 실형 확정 판결을 받는다면, 집행유예의 효력이 소멸(실효)되어 유예된 형이 집행된다(형법 제63조).

 

다만, 집행유예라 해도 자격정지 이상의 형에 대한 집행유예였다면, 소위 말하는 전과기록인 ‘수형인명표’에 기재되어 등록기준지 관할 시·구·읍·면사무소에 송부된다(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전과자라는 꼬리표는 따라다니게 되는 것이다.

 

선고유예는 유예기간(집행유예와 달리 2년으로 법에서 규정) 동안 선고 자체를 미뤄둔다. 집행유예보다 더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만큼 더 엄격한 실효 규정을 두었다. 유예기간 동안 과실(실수)로라도 범한 죄가 있어 자격정지 이상의 확정 판결을 받거나, 과거에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받은 전과라도 발견된다면, 유예된 형이 선고된다(형법 제61조).

 

선고유예는 선고 자체가 없었으므로 전과기록도 기록되지 않는다. 다만, 범죄경력자료라는 이름으로 경찰청에서 관리하는 자료로는 남아 수사나 재판, 공무원 임용 등과 같은 경우 조회될 수도 있다(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5호).

 


- 유예 기간이 지나고 난 후

 

유예 제도의 중요한 점은 아무 사고도 없이 무사히 유예 기간이 종료됐을 때에 있다. 그 경우 집행유예의 선고는 ‘효력을 잃는다’(형법 제65조). 법적으로 유죄 선고가 없었던 것으로 보겠다는 의미다. 선고유예의 경우에는 ‘면소된 것으로 간주’한다(형법 제60조). 기소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집행유예가 종료되면 집행유예는 등록기준지의 전과기록도 삭제된다(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 제8조 제1항). 다만 경찰청 범죄경력자료에는 남아 있어 향후의 수사나 재판에서 활용될 수는 있다. 선고유예 역시 범죄경력자료에 남아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물론 실형의 경우도 특정 기간이 지나면 전과기록이 삭제될 수 있지만 그 기간이 최소 7년 이상이 지나야 한다는 점에서도 유예 제도는 실형 선고와 확연한 차이가 있다.


 

- 죄목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변호사들

 

이처럼 집행유예와 선고유예는 상당히 너그러운 제도다. 유죄가 인정됨에도 형을 살지 않고, 전과기록의 처리도 더 완화되어 있다. 그렇기에 유예는 특정한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만 허용된다.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선고될 때만 가능하다. 선고유예는 1년 이하의 징역·금고·자격정지 또는 벌금형으로 더욱 엄격하다. 집행유예나 선고유예 모두 형법 제51조에서 정한 정상참작 사유(1.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2. 피해자에 대한 관계, 3.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4. 범행 후의 정황)가 있는 경우에 한정되며, 특히 선고유예는 ‘개전이 정상이 현저’해야만 한다(형법 제59조 제1항). 형을 선고하지 않아도 재범을 하지 않을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선고될 형 자체가 높지 않아야만 유예를 받을 수 있다 보니, 유죄임이 확실한 사건에선 피고인들이나 변호사들은 가능한 형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적어도 3년 이하의 징역이 선고되어야 교도소에 들어가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제도를 잘 활용(?)한 피고인들과 변호사들로 인해 국민들의 공분을 사는 조직범죄, 기업범죄 등의 범죄자들이 처벌을 받지 않고 풀려나 전과 같은 직위에서 일을 그대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특별법’들을 만들어 범죄의 최저 형량 자체를 높여버림으로써 집행유예의 가능성을 차단하기도 한다.

 

사기를 예로 들면, 일반 사기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할 수 있다(형법 제347조 제1항). 위 규정에는 하한이 없으므로, 최소 하한 규정(형법 제42조)에 따라 1개월의 징역이 선고될 수도 있으니 상황에 따라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도 충분히 내려질 수 있다.

그런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선 5억 원 이상의 사기나 횡령·배임은 최소 3년 이상의 징역형을, 50억 원 이상은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규정했다(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 이 정도 규모의 사기 범죄에선 집행유예가 선고되기 위해 피해자에 최선의 피해 회복을 하는 등의 노력을 다하여 법원에서 최대한의 감형(2분의 1)을 해주지 않은 한 집행유예가 쉽지 않게 된다.

 


<tip box>

·수형인명표(전과기록)는 회사 취업시 조회되나요? : 일반 회사라면 조회할 수 없다. 범죄경력, 수사경력 등의 조회는 범죄 수사나 재판을 위해, 공직 임용과 병역 복무 등과 같이 법이 정한 특별한 경우에 한정되기 때문이다(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 제6조 제1항).

·회사에서 스스로 전과기록을 받아오라고 하면 제출해야 하나요? : 만약 수형인명표와 같은 전과기록, 선고유예의 기록이 있는 범죄경력자료나 수사경력자료를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 제6조 제1항을 위반해 취득한다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 제10조 제2항).

**위 칼럼은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월간지 '사학연금' 2020년 3월호에 게재됐습니다.

http://tpwebzine1.com/wp/?p=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