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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가적인 관심에 놓인 사건들이 있었다. 유명인사들의 가족들이 문서를 위조해 잇달아 기소됐기 때문이다. 종종 해외 대학 졸업 서류를 위조해 어학원에 취업한 원어민 강사의 이야기가 뉴스를 타기도 한다. 문서를 위조한 것도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이제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됐다. 그런데 문서위조죄는 법적으로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어서, 생각지도 않은 것이 범죄로 처벌되기도 하고 의외로 처벌의 대상이 아닌 것들도 있다.
만약 취업을 위한 경력증명서나 입학을 위한 수상내역 ‘파일’을 위조했고 이 파일을 그저 이메일로 전송만 했다면 업무방해죄로 기소될 수는 있어도 문서위조죄로는 기소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떻게 그럴수 있을까?
- 문서 파일 위조만으로는 처벌 받지 않는다
우리 형법은 문서를 작성할 명의나 권한이 없음에도 문서를 만들어내면 문서위조죄로, 이미 만들어진 문서의 내용을 권한 없이 변경하면 문서변조죄로 처벌하고 있다(형법 제225조, 제231조). 문서에 대한 사람들의 신용을 보호하기 위해 처벌규정을 둔 것이다.
그리하여 위·변조 문서를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제출하지 않았더라도, 위·변조를 한 그 순간처벌하고, 위·변조 문서를 사용했다면 행사죄로 추가 처벌을 하고 있다(형법 제229조, 제234조).
그런데 문서란 개념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처벌하려면, 개념이 의미하는 범위를 정해야 한다. 이 작업은 상당히 어려운데, 모든 상황과 모든 사람에 대해 적용될 수 있는 법률의 특성상 적용 범위를 섬세하게 정하지 않을 경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하는 식으로 처벌받는 사람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거나 부정하게 처벌을 면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서 위·변조죄의 ‘문서’를 무엇으로 보느냐도 문제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법원은 “문자 또는 이에 대신할 수 있는 가독적 부호로 계속적으로 물체상에 기재된 의사 또는 관념의 표시”로써 권리나 의무, 사실증명에 관한 것이라고 하는데(대법원 2010도6068 사건), 이 말만으로는 어떤 것이 문서인지 알기 어렵다. 쉽게 말하면 형법에서 말하는 문서는 문자나 부호를 써서 종이와 같은 것에 적어둔 것 중에서 계약서나 증명서 같은 것을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프로젝터나 모니터 스크린에 띄운 문서는 계속적으로 표시되는 것이 아니어서 문서가 아니다. 이 법리(法利, 법률적 논리)를 적용하여,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이미지는 형법상 문서죄의 문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 등을 통해 신분증이나 자격증명서 파일을 만들어내도 출력을 하지 않은 한 문서위조죄로 처벌하지는 판결이 여러 차례 있었다(대법원 2011도10468 사건 등). 취업을 위해 경력증명서 파일을 허위로 만들어 이메일로 보냈어도, 적어도 문서위조죄로는 처벌받지 않는 것이다. 단, 업무방해죄 등은 별개 문제이다.
반면에 서류를 작성해서 출력하거나 이미 출력된 서류에 내용을 추가하거나 바꾸는 등 서류 위·변조를 한 뒤 이를 스캔해서 컴퓨터 파일로 만들어 메일로 보냈다면, 이 경우는 문서 위·변조죄도 성립할 뿐 아니라 위·변조한 문서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위·변조문서행사죄로도 처벌받게 된다(대법원 2008도5200 사건). 문서위조죄의 핵심은 형법상 ‘문서’로 만들어졌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 다양한 문서위·변조 범죄들
흔히들 주민센터에 들러서 이미 사망한 사람의 인감증명서 발급을 신청할 경우 위조죄로 고발조치 한다는 문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문서 명의자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처벌받기 때문인데, 이러한 취지에서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병원의 이름으로 증명서를 발급했을 때에도 문서위조죄로 처벌되기도 한다(대법원 2002도18 사건). 사람이 믿을 만하게 작성된 것이기만 한다면 가상의 공공기관의 이름으로 서류를 써도 범죄가 되는 것이다.
일상에서 수 없이 많은 문서가 있듯이 문서죄가 다루는 양태도 이렇게 너무도 다양하여, 범죄가 되느냐 안되느냐도 각 상황에 따라 세세하게 달라진다. 다른 사람의 신분증의 사진을 자신의 것으로 바꾼 경우, 문서의 동일성을 상실케 하였다는 이유로 공문서 위조죄가 성립한다(대법원 91도1610 사건). 하지만 자신의 신분증 앞자리를 볼펜으로 바꿔쓴 뒤 투명테이프로 덧바르는 것과 같은 조악한 조작은 문서위조죄로 처벌하지 않기도 한다(대법원 97도30 사건). 누가 보아도 위조된 것임을 알 수 있어서 속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 누군가 만든 서류의 복사본을 변경하거나,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복사해 이름만 바꿔넣은 것과 같은 복사본 위·변조도 원본 위조와 마찬가지로 처벌된다(형법 제237조의2).
만약 공무원에게 거짓으로 신고를 해서 결혼할 맘도 없는 사람과 혼인신고를 해버렸다면 공문서 위조가 될까? 이때에는 문서를 직접 위조한 것은 아니어서 위조죄로 처벌은 못한다. 하지만 이런 행위를 마냥 내버려둘 수는 없고, 공정증서원본부실기재죄라는 복잡한 이름의 죄로 처벌하고 있다(형법 제228조). 공무원이 잘못된 사실을 알게 해 잘못된 공문서인 혼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문서는 어떤 사실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증명해주는 가장 간단하고도 강력한 수단이다. 그래서 법률에는 문서를 조작하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여러 규정을 두었고, 위·변조 행위를 판별하는 기법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만약 문서의 위·변조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날 경우 치명적인 문제가 되고, 조금의 의심이라도 있을 경우 명의자를 증인으로 불러서라도 진위를 확인하고 있다. 순간의 이익을 위해 유혹에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겠다.
<tip box>
· 재판에서 상대방이 낸 증거서류가 위조된 것인지 확인할 수 있나요? : 민사소송에서 상대가 낸 계약서나 차용증, 진술서가 의심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법원에 문서의 진정성립, 즉 문서가 명의자가 거짓 없이 작성했다는 점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면 상대는 그것이 진정한 것인지 증명할 의무가 있다(민사소송법 제357조). 이때 서류에 서명이나 날인, 무인(지장)이 있을 경우 서류가 진정하다고 추정되어 도리어 그 날인 등이 위조된 것이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민사소송법 제358조). 이때 필적이나 인영의 대조를 통한 위조 증명이나 감정을 해볼 수도 있으며(민사소송법 제359조), 서류가 진정한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소송을 별도로 제기할 수도 있다(민사소송법 제250조). 명의인을 증인으로 신청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위 칼럼은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월간지 '사학연금' 2020년 6월호에 게재됐습니다.
http://tpwebzine1.com/wp/?p=5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