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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앞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던 김씨, 우회전 직후 횡단보도가 있었지만 보행자 신호는 마침 붉은 색이었다.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보니 안전하게 통과하고자 속도를 줄여 천천히 횡단보도를 통과하던 중,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차 오른편에 무언가 부딪힌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차가 횡단보도에 들어선 이후 보행신호가 들어왔고 초록불만 보고 달려 나가던 어린이가 그만 차 뒤편에 부딪히고 만 것이다!
이 경우에 김씨는 민식이법으로 가중처벌을 받게 될까? 우회전을 할 경우에는 우회전 직후의 횡단보도에 보행신호가 들어와 있어도 통행해도 된다(물론 보행자 보호의무를 지게 되므로 보행신호에 횡단하는 보행자가 있으면 일시정지해야 한다). 하물며 보행자 정지 신호를 보고 진입한 운전자에게 과실이 있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차 옆면으로 달려드는 보행자까지 대비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법령과 판례들에 따르면 김씨는 무과실을 자신할 수 없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모든 차의 운전자는 신호에 따라 횡단보도를 횡단하는 보행자가 있을 때에는 횡단보도 진입 선후를 불문하고 일시정지하는 등 보행자를 방해해선 안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대법원 2016도17442 사건, 다만 이 판례에서 법원은 자동차가 횡단보도에 먼저 진입한 경우로서 차량이 그대로 진행해도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거나 통행에 아무런 위험을 초래하지 않을 상황이라면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보고 있고 이 사건의 환송 전 2심 법원은 운전자의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 논란 속의 민식이법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규정속도(30km/h)를 초과하거나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하여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경우 매우 강화된 처벌을 부과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이하 ‘특가법’) 제5조의13은 소위 민식이법이라 불리면서 최근 논쟁의 중심에 있다.
제한속도를 지켜야 한다는 규정은 어렵지 않게 지킬 수 있지만,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해야 할 의무(소위 ‘안전운전의무’)를 위반할 경우 가중 처벌한다는 규정은 사실상 어린이보호구역 내의 모든 인사사고를 가중 처벌할 위험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운전의무 위반자는 고의로 죄를 범한 자가 아닌 실수로 사고를 일으킨 과실범인데, 실제로는 차량 사고의 가해자 대부분이 과실범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 업무상 과실은 무엇인가
실수에 대해서도 처벌할 경우 자칫 전과자를 양산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형법 체계에선 모든 과실범이 처벌의 대상이 되진 않는다. 법률에 규정된 경우만 처벌되며, 대표적으로 실수로 방화한 경우를 처벌하는 실화죄(형법 제170조), 과실치사상(형법 제266, 267조)이 있다. 운전자가 차량으로 사람을 친 경우도 과실범에 해당한다. 다만 일반 과실이 아닌 업무상과실을 위반한 것으로 평가되어 업무상과실치사상죄(형법 제268조,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로 평가된다.
그러면 과실범의 과실은 도대체 무엇이고, 운전자에 적용된다는 업무상 과실은 무엇인가? 법원은 일반인에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을 과실이라 보고 있다. 이를 다시 풀어보면 특별한 능력이나 경험이 없는 사람 누구라도 당연히 기울였어야 할 정도의 주의도 하지 않아서 사람이나 물건을 해하는 결과가 발생했다면, 이 사람은 과실범으로 처벌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업무에 종사하는 자는 일반인에 비해 이런 위험에 대해 더 높은 주의의무가 있고, 위험한 결과를 예견할 수 있는 가능성도 더 높다고 보아 더 무겁게 처벌하고 있는데, 이를 업무상과실이라고 부르고 있다. 차량에 충격을 입은 사람은 중상을 입거나 사망할 위험이 매우 높기에 차량 운전자에게는 높은 수준의 주의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법원은 운전자에게 ‘교통규칙을 준수하면서, 전방좌우를 주시하며 언제든지 급제동할 준비를 취하고 전방에 사람이 있을 경우 경적을 울리고 서행하거나 정차하는 등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대법원 70도62 사건)’고 보고 있다. 나아가 차도 주변의 보행자가 어린아이인 경우 더욱 무거운 주의의무를 부과하여 진행방향의 어린이가 차도로 뛰어드는 경우를 예견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대법원 70도1336)고도 보고 있다.
결국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 제2항의 12대 중과실은 물론이고 도로교통법 상 여러 규정들(제25조 교차로 통행방법, 제27조 보행자보호 등)을 위반한 경우 거의 대부분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람은 완전무결하지 않고, 다양한 사고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판단도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 법 체계는 결과예견이 가능하거나, 결과를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한 경우에야 과실을 범했다고 판단하고 있다(대법원 2010도10104, 2000도2671 사건).
또한 스스로 교통규칙을 준수한 운전자에겐 다른 운전자들도 교통규칙을 준수할 것이라 믿고 운전해도 충분히 주의의무를 다했다고 보는 융통성도 있다. 이른바 신뢰의 원칙이라는 법원리로, 정상적으로 중앙선 오른쪽 방향 차로로 주행하던 차량은 맞은 편 차로의 주행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올 것까지 대비할 의무는 없다거나(대법원 92도1137), 자동차전용도로에 갑자기 자전거가 난입할 경우를 대비할 의무가 없고(대법원 80도1446), 고속도로에 무단횡단할 보행자가 있을 것을 예상해 감속할 의무는 없다(대법원 2000도2671)는 판례들이 이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점차 가중되는 보행자 충격 사고, 보행자 우선주의 등을 고려하여 법원은 차량과 보행자 간의 충돌사고시에는 이러한 신뢰의 원칙을 엄격하게 제한해서 적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위 판례들처럼 누구라도 예견하기 힘든 대인사고이거나, 도로법규를 준수하고 전방을 철저히 주시해서 보행자를 발견한 즉시 적절한 제동을 하였음에도 사고가 발생한 경우가 아닌 이상,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으로 과실범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tip box>
· 어린이 충돌 사고시의 주의점 : 사고가 없도록 법규를 준수하고 안전운전을 다해야겠지만, 그럼에도 어린이를 상대로 한 인사사고가 발생했다면 아무리 외상이 없어보여도 반드시 사고신고와 함께 피해자를 의료기관에 호송되도록 하고, 본인의 인적사항을 피해자의 보호자에 전달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뺑소니에 해당하는 특가법 제5조의3 위반죄는 교통사고의 경중이나 피해자의 추격여부와 상관없고(대법원 2017도15651 사건), 목격자에게 조치를 부탁하고 실제 조치를 보기 전 현장을 이탈해도 처벌되며(대법원 2005도5981 사건), 피해자인 어린이가 괜찮다고 한 말만 듣고 구호조치나 인적사항 제공 없이 이탈해도 뺑소니가 되기 때문이다(대법원 94도1651 사건).
**위 칼럼은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월간지 '사학연금' 2020년 9월호에 게재됐습니다.
http://tpwebzine.com/page/vol406/view.php?volNum=vol406&seq=14